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색 작전 (문단 편집) === 히틀러의 야심 === 중부에서 소련군을 다시금 격퇴하고 여러 방면에서 몰려오는 소련군을 차단했다고 해서 독일군의 맘이 편했던 것도 아니다. A-A선까지 진격하여 한방에 소련을 무너뜨리겠다는 바르바로사 작전은 소련의 격렬한 저항으로 당초 독일의 계획보다 진격이 둔화되었고 그 결과 가을의 진창, 겨울의 빙판이라는 악재가 추가되었다. 이어지는 모스크바 전투에서도 별다른 성과없이 물러났으며, 되려 소련군의 반격에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일군 장성들도 그들이 얕보았던 소련의 전쟁수행능력을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점차 전황이 어려워질 것을 예측했다. 1942년 여름 히틀러는 한가지 작전안을 꺼내들었다. 장군들은 전선 중앙의 모스크바 점령을 마무리 짓고, 소련에게 막대한 정신적 충격을 가하고자 했다.[* 소련 또한 독일이 모스크바를 공격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독일군의 하계공세는 돈강까지 진격하는 소소한 수준에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캅카스]] 지역을 공격, 동부군과 중동을 흑해를 통해 연결하고, 캅카스의 막대한 천연자원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에르빈 롬멜]] 장군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1942년 2월까지 진행된 영국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4월에는 토브룩을 포위하며 [[수에즈 운하]]와 [[중동]]을 공격권에 넣자 얻은 자신감이었다. 물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석유였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석유였다. 독일이 캅카스의 유전지대를 손에 넣는 다면 소련군의 연료 상황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독일군의 힘을 증강시킬 요소였다. 그러나 세계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우크라이나]] 남부까지의 거리는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보다 길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는 조지아를 관통하는 경로로 약 3600km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부산에서 서울-평양-신의주-단둥-베이징-상하이를 거쳐서 대만과 마주하고 있는 푸저우시 까지 육로로 가는 거리랑 같다!] 중간에 터키가 있으며 역시 터키와 러시아 사이의 험준한 산맥을 돌파해야 하는 지경이고 러시아 중부와 북부를 놔두고 남부로 대폭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여기서 롬멜의 역할이 있었다고 하는데 터키를 추축군 동맹에 끌여들여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였다.[* 2차대전 당시 터키는 중립국이였지만 친독성향이 높은 중립국 이였다. 실제로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1차대전 때 [[독일 제국]]의 [[동맹국]] 중 하나였고 2차대전 이후로도 한국과 함께 서독에 노동자를 보낼 정도로 당시에는 독일과 굉장히 친한 나라다.] 그러면 지정학적으로나 무력으로나 큰 이득을 가진 터키군과 합심해서 [[캅카스]] 까지의 진격로 확 열리는건 기본이고 보급로가 대폭 줄어드는 것은 옵션이지만, 롬멜의 경우 거의 1년 넘게 [[영국군]]과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이집트에서 제자리 싸움을[* 물론 이쪽은 이탈리아가 쓸데없이 영국에게 선빵날렸다가 거하게 털려 자신들의 영토였던 동리비아일대를 탈취당했기 때문이었다. 롬멜은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로부터 동부 토브룩까지 수백km를 오가며 영국군을 격퇴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 기존의 이탈리아의 영토를 수복했던 셈... ] 하며, 수에즈조차 점령 못 했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이미 태풍 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에리히 폰 만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독일군 장성들이 건의했지만 히틀러는 '본인의 친애하는 장군들은 이 작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 유감이오.' 라면서 작전을 강행했고 이것이 이번에도 이어진 것이다.] 물론 롬멜한테 물자가 가면 되겠지만 그게 전부 지중해 바다 속과 러시아로 가고 있었다.[* 그나마 롬멜이 엘 알라메인까지 진격할수 있었던 것도 [[토브룩]] 점령 당시 영국군이 미처 폐기하지 못한 대량의 물자를 노획할 수 있었던 덕분이고 그 후에도 본국의 지원은 부족해서 엘 알라메인의 영국군 방어선 돌파는 끝내 실패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마디로 지원도 제대로 못해주면서 지원이 빵빵해도 될까말까한 결과물을 히틀러는 당연시하고 있었다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